그런 날 - 남진우
그런 날
하루 종일 바람은 불고
마음은 천장 구석의 얼룩을 따라 한없이 번져가고 싶은 오후
뒷문 덜컹이는 소리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오고
느지막이 몸 일으켜 창문을 열면
가로수와 전깃줄 사이를 헤매는 눈송이가 보이고
두터운 옷 뒤집어쓴 사람들 느릿느릿 거리를 지나쳐 가고
하염없이 시간은 흐르고
아무도 내게 전화조차 걸어오지 않는 그런 날
옆집 옥상의 언 빨래들 문득 펄럭이다 그칠 때
창밖을 휘날리는 눈발 속을 걸어오는
하얀 눈사람이 보이고
어느덧 방 안에 들어온 눈사람이
눈웃음 지으며 다가오고 창밖 하늘에 부서져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저물녘
방을 가득 채운 채 하얗게 웃고 있는 눈사람 앞에서
나 또한 멀거니 웃고만 있는 그런 날
오래고 오랜 나날 먼 길을 굴러오며 커다래진 눈사람도
차츰 녹아가고
내 발밑을 적시며 흐르는 눈사람의 물 앞에서
나 아무리 도리질해보지만
나도 어느 날 길 떠나
어느 누구 앞에 눈사람 되어 서고 싶은 그런 날
뒷문 덜컹이는 소리에 종일토록 마음은 붐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