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다-후배 K에게’ 박철(1960∼ )
나도 이제 한마디 거들 나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한마디 하마
시를 쓰려거든 반듯하게 쓰자
곧거나 참되게 쓰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사진기 앞에 설 때
우뚝하니,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이 멋쩍어서
일부러, 어거지로, 더욱 어색하게
셔터가 울리길 기다리며 몸을 움직인다
말 그대로 모션을 취하는 것이다
차라리 반듯하게 서자
촌스럽게, 어색하게, 부끄럽게
뻣뻣하게 서서 수줍으면 좀 어떠랴
이런 말 저런 이름 끌어다 얼기설기 엮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아닌 모션 취하지 말고
그냥 반듯하고 쉽게 쓰자
겉돌지 말고 직통(直通)할 때 속이 다 후련하다.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곧바로 들어가야 한다. 여럿의 여닫이문을 세워 놓지 말아야 한다. 불기자심(不欺自心)도 용기가 필요하다. 모션은 토끼 머리에 뿔을 세우는 일이다. 모션은 거북의 등가죽에 털을 기르는 일이다. 헙수룩하면 어떤가. 적어도 토끼뿔, 거북털은 만들지 말자. 나도 사진기 앞에서는 으레 왼다리를 꼬거나 턱을 괴거나 했지만, 오늘부터 이제 그 일은 그만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