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윤희상(1961~ )
풋풋하게 둥둥 뜬다.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남자가 좋아질 때 남자를 여자의 속에 감춘다. 자기 것은 자기 것이 아닐수록 좋다.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여자가 좋아질 때 여자를 남자의 속에 감춘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옆에서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를 바라본다. 서로의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와 여자가 없어졌다. 모양을 잃어버리고도 살아 있다. 꿈틀 움직인다.
한 화장품 광고는 경고한다. '눈웃음치지 마라. 찡그리고 화내지 마라. 밤새워 놀지 마라!' 하지만 자기네 아이크림 바른 다음엔 주름 걱정 없이 그거 '다해라!' 광고한다. 화장품 쓸 것까지 없다. 사랑으로도 그거 다할 수 있다. 눈웃음도 치고 질투로 미친 듯이 화도 내고 밤새워 놀 수도 있다. 단 그러면서 눈가엔 서로에의 관용과 성숙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 하여튼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여자와 남자 그 글자들이 바글대는 이 시의 제목을, 보지 않고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김경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