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 그릇 - 조창환(1945~ )
촛불은 불타지 않고
몸 맑게 가라앉힐 뿐
제 몸이 녹는 그릇인 줄을
알면서도 맑은 영혼은
고요한 시간에 샘이 된다
고요한 시간에 샘이 된 초는
피멍든 흔적 가라앉혀
빛을 만들고
그 빛으로 이슬 떨군 사람
길 비추어줄 뿐
날이 저물고 해도 저문다. 이제는 촛불을 켤 시간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촛불을 켜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촛불이 되고 있는가. 초는 자신을 위해 불을 밝히지 않는데, 나는 나를 위해 밤늦게 초를 사러 간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