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남자 / 윤예영
책 읽는 남자를 사랑했다. 공원 벤치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책을 읽는 남자, 책을 읽다 가끔씩 책 속에 숨어버리던 남자, 책 속에 들어가 오렌지 껍질을 벗기며 다시 책을 읽는 남자, 가끔씩 나를 읽던 남자, 내 입술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던 남자, 내 가슴에 밑줄을 긋던 남자, 내 안에 책갈피를 끼워두던 남자, 가끔씩 나를 접어버리던 남자, 그러나 이제는 먼지 쌓인 책꽂이 한켠에 꽂힌 남자. 헌책방에 치워버릴 수도 없는 남자.
-시집 <해바라기 연대기>(랜덤하우스)에서
윤예영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현재 서강대 대학원에서 옛날이야기와 기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