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붙잡고 우는 여자 - 박형준 (1966~ )
언제나 밤이 오고, 잎들의 지문이
선명해지는 밤길을 걸어간다.
지난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열매의 맛이
아려온다, 꽃은 찢긴 살처럼 빛난다.
새벽 두 시에 나무를 붙잡고 우는 여자
머리 위에 얹혀진 찬 달.
굳이 묻지 마시라. 왜 울고 있느냐고 묻지 마시고, 그냥 못 본 척 지나가시라. 여자의 머리 위로 뜬 달마저 아무 말이 없다. 사랑은 저토록 사람을 처절하게 만든다. 아침은 절망의 밤이 지나야 찾아오는 법.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사는 일은 아직도 눈물의 고두밥을 먹고 사는 일이다.
정호승<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