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의 죽음' 김광규(1941~ )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며 자유를 살던 어린 게. 아직 생명의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비명횡사한 어린 게의 죽음. 이 시편을 대하며 나는 왜 까닭도
없이 2002년 장갑차에 치여 죽은 어린 여중생 미순.효순이의 앳된 얼굴이 '어린 게'와 함께
겹쳐 떠오르는 것일까? 이 시는 문명의 폭력성만을 고발한 것으로 읽히지 않는다.
'군용 트럭'이란 시어 때문이다.
이재무 <시인>
이재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