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1941~ ), '병원' 부분
나는
병원이 좋다
조금은,
그래
조금은 어긋난 사람들,
밀려난 인생이.
아금바르게
또박거리지 않고
조금은 겁에 질린,
그래서 서글픈,
좀 모자란 인생들이 좋다.
거리며 빌딩이며
수많은 장바닥에서
목에 핏대 세우는
그 대낮에
귀퉁이에 서서
어색한 얼굴로
사랑이니
인간성이니
경우니 예절이니
떠듬거리는
떠듬거리는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나는 병원이 좋다.
찌그러진 인생들이 오가는,
그래서
마음 편한,
남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운,
머지않아 끝날 그러한,
그래서
마음이 편한
아
나는 역시
'쟁이'던가
아
나는 역시
'산송장'이던가
아아
나는 역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던가
좋다.
끝이 분명 가까우니,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느니.
슬픔이 지혜를 불러온다는 서양 속담처럼 사람은 괴롭고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생을 온전히 되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보름 간 독감이 몸에 머물다
갔다. 살과 뼈를 물고 갉아대는 바이러스에 시달리면서 나는 오르지 땀으로 무거워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더운 김이 오르는 밥 한 그릇 먹는 것만을 소원하였다. 병원에
가면 '오르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재무<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