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1964~ ), '붉은풍금새'
누나하고 부르면
내 가슴속에
붉은풍금새 한 마리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풍금 뚜껑을 열자
건반이 하나도 없다
칠흙의 나무궤짝에
나물 뜯던 부엌칼과
생솔 아궁이와 동화전자주식회사
야근부에 찍던 목도장,
그 붉은 눈알이 떠 있다
언 걸레를 비틀던
곱은 손가락이
무너진 건반으로 쌓여있다
누나하고 부르면
내 가슴속, 사방공사를 마친 겨울산에서
붉은 새 한 마리
풍금을 이고 내려온다
아저씨. 옛 생각이 나세요. 비어있으나 꽉 찬, 정겨운. 저는 파란 매미예요. 한강 옆에 살다가 작년부턴 신도시에 살아요. 우리 누난 흰 가죽 자켓 입고 휘날리다가 어제부턴 보르헤스를 읽어요. 아저씨! 추억의 배가 다 완성되면 푸르른 노래 한 곡 불러드릴게요.
박상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