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1962~ ), '식목일'
사람들이 공중에 미래를 그려 보는 날
나무들이 산 채 누워 거리를 질주하고
도살장으로 가는 한 트럭 돼지들이
마지막으로 벌이는 죽음의 카퍼레이드
어려서 가출하다가 꺾꽂이 해 놓은 미루나무 뽑아
길바닥에 써 보았던 그 여자애 이름
심어지는 것들
심어지는 것들
길 위에서
뿌리 열 개를 꼼지락거려 보는
선농단(先農壇)에 제를 올리고 임금이 친히 적전(籍田)을 갈아 농사의 소중함을 알렸다는 날.
문무대왕이 3국을 통일했다는 날. 네브래스카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날 등등. 여전히 심어지는
것들, 씌어지는 것들, 그렇게 뿌리박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들. 그래서 더 힘껏 솟아오르는 것들.
박상순<시인>
박상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