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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숙(1958~ ), '정오의 버스' 전문
여름 한낮
고요한 버스는 장의차 같네
나를 운구해 가는 저 햇볕들의
따가운 행렬
나는 이런 상상을 하네
즐거운 송장이 되어
내가 안치되고 싶은 곳,
가령 고슴도치가
몸뚱일 박고 단물을 들이키는 수박의
농익은 살
벌레가 들어앉은 풋살구
그 발그레한 봉분
그 부드러운 석실
달콤한 침상에 누워
시간의 헛점을 그리는 광물의 시계가
다 녹아 흐르도록
쌓인 피로가
다 닳아질 때까지
지나가는 햇빛과 바람
그만큼의 낮과 밤을
누워 있으리
검은 오석 위를 펄쩍거리며 뛰어 다니는
사나운 시간의 메뚜기들
그러나 저게 뭐냐
저기 중앙선에 둘둘 말려 있는
더러운 이불
피가 엉겨붙은 바닥
다시 일어서는 빽빽한
날짜들
동공처럼 벌어진 신발
'수박의 농익은 살'이나 풋살구의 '발그레한 봉분' 같은 무덤 속에서 벌레처럼
단물을 빨며 누워있는 것 같은 죽음을 상상할 때 시인의 어조는 아이처럼 즐겁다.
그러나 그 즐거움 속에는 삶의 '빽빽한' 시간에 대한 무서운 역설이 숨어 있다.
시인은 곧 '더러운 이불'과 '피에 엉겨붙은 바닥'의 죽음을 발견하고
'동공처럼 벌어진 신발'처럼 경악한 채 굳어진다.
그 경악은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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