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 수 11,522 추천 수 9 댓글 0
진은영(1970 ̄ ), '벌레가 되었습니다' 전문
내 방이었습니다
구석에서 벽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천장 끝에서 끝까지
수십 개의 발로 기었습니다
다시 벽을 타고 아래로
바닥을 정신없이 기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문을 찾을 수 없다니
밖에선 바퀴벌레의 신음 소리
아버지가 숨겨둔 약을 먹은 것입니다
어머니 내 책상 위에
아버지가 피운 모기향 좀 치우세요
시집 위에 몸 약한 날벌레들
다 떨어지잖아
동생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는 문밖으로
재빨리 나가려고……
동생이 소리질렀습니다
여기 또 있어
시인의 마음은 벌레처럼 예민한 것 같다.
벌레의 눈으로 보면 사람의 작은 동작, 사소한 말 한 마디도 큰 폭력이 된다.
내 집, 내 방도 생명을 위협하는 지뢰밭이 된다.
벌레가 되어 보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는 너무 작고,
폭력으로부터 숨기에는 작은 몸도 너무 크다.
벌레에 달린 많은 발들이 다 자잘한 번민 같다.
마음대로 드나들 문이 없는 번민.
그 많은 다리들을 어찌 다 먹여 살릴까.
김기택<시인>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53,547 | 2023.12.30 |
3930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1~4) - 이해인 | 風文 | 281 | 2024.11.08 |
3929 | 사랑도 나무처럼 - 이해인 | 風文 | 227 | 2024.11.08 |
3928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김수영 | 風文 | 721 | 2024.11.08 |
3927 | 양지쪽 - 윤동주 | 風文 | 251 | 2024.11.08 |
3926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6~9) - 이해인 | 風文 | 258 | 2024.11.06 |
3925 | 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 이해인 | 風文 | 321 | 2024.11.06 |
3924 |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 風文 | 243 | 2024.11.06 |
3923 | 산상 - 윤동주 | 風文 | 226 | 2024.11.06 |
3922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1~5) - 이해인 | 風文 | 135 | 2024.11.04 |
3921 | 사랑 - 이해인 | 風文 | 231 | 2024.11.04 |
3920 | 파리와 더불어 - 김수영 | 風文 | 184 | 2024.11.04 |
3919 | 닭 - 윤동주 | 風文 | 179 | 2024.11.04 |
3918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8~21) - 이해인 | 風文 | 696 | 2024.11.01 |
3917 | 비 갠 아침 - 이해인 | 風文 | 643 | 2024.11.01 |
3916 | 미스터 리에게 - 김수영 | 風文 | 162 | 2024.11.01 |
3915 | 가슴 2 - 윤동주 | 風文 | 187 | 2024.11.01 |
3914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3~17) - 이해인 | 風文 | 715 | 2024.10.28 |
3913 | 비밀 - 이해인 | 風文 | 226 | 2024.10.28 |
3912 | 凍夜(동야) - 김수영 | 風文 | 245 | 2024.10.28 |
3911 | 가슴 1 - 윤동주 | 風文 | 181 | 2024.10.28 |
3910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7~12) - 이해인 | 風文 | 212 | 2024.10.25 |
3909 | 부르심 - 이해인 | 風文 | 207 | 2024.10.25 |
3908 | 싸리꽃 핀 벌판 - 김수영 | 風文 | 208 | 202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