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균(1960~ ), '진흙발자국' 부분
드디어 진흙발자국이 꽝꽝 얼어붙었다
진흙이 입 벌려 발자국 꽉 물고 있는 것처럼
나는 아픈 발자국 진흙에 남겨 놓고 걸어나왔다
돌이켜보니 나는 저 족적으로
부단히도 삶을 뒷걸음질쳐왔다
지난봄 밭에다 씨앗 심을 때
논배미 모 꽃을 때 모두 뒷걸음질쳐야 했으니
초록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초록이 내 발자국 따라왔던 것이었으니
저 꽝꽝 언 진흙발자국은 초록 데리고
봄으로의 진흙 속으로 뒷걸음질치고 있으리라
그때마다 나는 밭이나 논배미에 나가
초록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놓곤 했었다
그렇게 입 딱 벌린 언 발자국에다
내 아픈 발을 슬그머니 디밀어보았던 것,
진흙의 슬픈 국자처럼
내 꽝꽝 언 진흙발자국은
지금 초록을 떠내고 있는 중이다
모는 뒷걸음질치며 심어야 한다. 그러면 뒷걸음질치는 진흙발자국을 따라 초록이 느릿느릿 따라온다.
그 진흙발자국은 파주에서 소를 키우는 농부인 시인의 몸이며, 뒷걸음질치듯 걸어온 그의 삶이다. 한
편으로는 초록을 없애며 빠르게 앞으로만 달리는 모든 바퀴 문명에 대한 슬픈 풍자이기도 하다.
김기택<시인>
김기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