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1956~ ), 「꿈이 없는 빈 집에는」 전문
꿈이 없는 빈 집에는
비스켓 하나라도 바스락거리면
너무 외롭다. 너무 황홀한 꿈이 비스켓 속에
타기 때문. 바스락거리는 비닐껍질을 까고
가는 철사줄 같은 내 아이의 손이 발라내는 비스켓
어찌나 아득하게 소란한 그 소리를
우리의 귀는 잠결에서도 흘려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의 손이 더 우그러져 비스켓 공장을 만든다면
이 세상이 다 소란할 비스켓 공장을 만든다면
아내와 나는 이렇게 어지러운 외로움에
걸레조각 같은 적막으로 몸을 닦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장미꽃이 핀 집에 장미는 더욱 아름답고
우그러진 철삿줄은 우그러져서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지만 오래오래, 꿈이 없는 빈 집에는
비스켓 하나라도 바스락거리면
너무 황홀한 꿈이, 거기 불탄다.
비스켓 소리 하나가 적막하고 외로운 일상을 깨운다.
적막과 외로움이 크기 때문에 비닐껍질 까는 작은
소리도 크고 소란스럽게 들린다.
시인은 이 사소한 소리에서 일상의 외로움을 태우는
불의 소리를 듣는다. 외로움이 바스락거리며 타오르
는 다른 세상을 본다. 갑자기 <꿈이 없는 빈 집>이
황홀한 소리로 아름답게 불탄다.
김기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