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진(1959~ ), 「물김치 사발」 전문
저녁상에 찰랑이며 놓인
물김치 사발
동동 뜨는 돌나물 한 술을 떠 먹으며
내가 들여다본 사발 속에
문득 연두빛이 풀어지고
우산리의 감나무 한 그루가 자라오른다
물김치 사발 속,
돌나물 이파리 사이로 깊어 보이는
감나무 윗가지에 산새 두 마리가
물소리를 내며 날아와 앉고
뭉클뭉클 산 능선이 감나무 위쪽으로
부풀어 오른다
감나무 속을 휘저으며
내가 떨어뜨린 밥숟갈을 적시는
부러진 잔가지들
산새는 푸득이며 날아가고
감나무가 사라진 저녁상 위에
우산리의 하늘만 아득히 흘러내린다
물김치 한 사발에 덩굴처럼 우르르 딸려 오는 <감나무 한 그루>, <산새 두 마리>, 뭉클뭉클 부풀어 오르는 <산능선>.
이것들은 혀의 기억이 끌어들인 것일 게다. 오래 전 물김치를 먹을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던
기억들일 게다. 맛은 이 모든 기억을 혀를 통해 온몸으로 환기시킨다.
김기택<시인>
김기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