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1955~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마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치자 향기, 술패랭이의 분홍색, 나비 날개의 무늬, 저녁의 하늘빛…
이들이 내뿜는 감각의 힘만으로도 삶과 죽음은 만날 수 있다.
무덤가를 맴돌던 나비가 풋잠에 든 얼굴에 내려앉을 때, 그것이
돌아올 수 없는 이의 손길이라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죽음은 삶 곁에 숨 쉬고 있다.
시는 그 감각의 길을 따라 피어난 호접몽(胡蝶夢)이다.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