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1962~ ) '장대비' 전문
오래된 쇠못의 붉은 옷이 얼룩진다
시든 꽃대의 목덜미에 생채기를 내며
긴 손톱이 지나가는 자국
아픈 몸마다 팅팅 내리꽂히는
녹슨 쇠못들
떨어지는 소리
하얀 마당에 푹 푹 단내를 내며
쏟아지는 녹물들
붉은 빗금을 그으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닭벼슬! 맨드라미! 백일홍! 해당화! 엉겅퀴! 큰바늘꽃붉은잎!
신음소리를 내며 막 벌어지는
상처의 입들,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며
나쁜 피를 다 쏟아내는 저녁
누가 빗소리를 녹슨 쇠못들 떨어지는 소리라 말하는가. 아픈 영혼에게는
빗방울도 내리꽂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 흰색이나 분홍의 화사한 봄꽃
과 달리 녹물을 받아먹고 자라 시뻘건 빛을 토하는 여름꽃들을 보라. 한
바탕 빗물이 휩쓸고 간 마을마다 상처처럼 남아 있는 저 붉은 얼룩을 보
라. 장대비 그친 뒤 철로변에 피어 있는 맨드라미 더욱 붉다.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