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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1956~) '21세기 임명장' 부분
100년 동안 너의 복무를 허락한다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중략)
너무 치닫지 말기 바란다
너무 자신만만하지 말기 바란다
더 이상 길을 내고
다리를 올리지 말기 바란다
길의 끝 다리 뻗은 자리
수렁에 닿지 말기 바란다
이미 쌓은 모래성
아슬한 낭떠러지가 되었구나
너무 높이 남긴 탑
허물고 가야겠구나
너무 분명하게 써놓은 약속
지우고 가야겠구나
너무 가득 차오른 불길한 아침
등지고 가야겠구나
100년 후
여기에 기록할 아무 공적이 없기를
잠시 떠맡은 해 별 풀 달
그냥 그 자리 둥실 떠 있기를
시인이 발급한 임명장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점점 '불길한 아침'으로 치닫고 있다. 불과 4년 만에 이렇게 되리라는 예감이 우려에 찬 사령을 내리게 한 것일까. 이제 중요한 것은 새 길을 내는 게 아니라 빠르고, 높고, 너무 분명한 길들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100년 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라고.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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