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1951~) '沈香(침향)' 전문
잠시 잊은 것이다
生(생)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
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
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
잠시 잊은 것이다
저 깊고 깊은 바다 속에도 가을이 있어
가을 조기의 달디단 맛이 유별나듯
오래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달디단 맛인가
불면의 香(향)인가
잠시 잊을 뻔했다
白檀香(백단향)이,
지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沈香(침향)을,
수백년 동안 물속에 묻혀 있던 침향(沈香)의 냄새를 미당은 이렇게 표현했다. "실파와 생강과 미나리와 새빨간 동백꽃, 거기에 바다 복 지느러미 냄새를 합친 듯한 미묘한 향내"라고. 침향뿐 아니라 고요히 시간을 견디어온 사람이나 작품에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 하지만 헐값에 감동을 사고파는 요즘 세상에 이런 원형질의 향기를 기대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는 것일까.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