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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옥(1950~ ) '벌써 사랑이' 부분
벌써 사랑이 썩으며 걸어가네
벌써 걸음이 병들어 절룩거리네
(중략)
병든 사랑은 아무도 돌볼 수가 없다네
돌볼수록 썩어가기 때문에
누구도 손대지 못하고
쳐다만 볼 뿐이네
졸아든 사랑, 거미줄 몇 가닥으로 남아 파들거리네
사랑이 몇 가닥 물질의, 물질적
팽창이었음을 보는
아아 늦은 저녁이여
머리를 탁탁 쳐서 남은 물질의
물질적 장난을 쏟아버리네
더 캄캄한 골목 가며 또 머리를 치네
마지막으로 물큰하게 쏟아지는
찬란한 가운데 토막, 사랑의 기억
더는 발길 받지않는 막다른 골목까지 왔네
신록의 시절은 잠깐, 무성한 잎사귀에서는 벌써 풀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한다. 무성하다는 것은 절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순결한 사랑의 기울기가 꺾이기 시작했음을, 저무는 일만 남았음을 알리는 신호다. 사랑이 한낱 '물질적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저녁, 막다른 골목을 걸어가는 슬픈 등이 보인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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