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1952~ ) '느낌' 전문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당신에게 '처음'이라는 말은 어떤 냄새.빛깔.소리.감촉을 돌려주는가.
처음 꽃이 필 때 꽃나무는 제 몸을 뚫고 붉게 터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꽃이 질 때 거기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
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충일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었을까. '느낌'은 그렇게 온다. 와서 그 영토 밖으로 한 걸음도 나
가고 싶지 않게 만든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물방울의 마른 얼룩만
희미하게 남을지라도.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