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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1955~ ) '동해남부선' 전문
바닷가가 보이는 작은 역에 기차는 서서
이제 막 다다른 봄볕을 부려놓고
동해남부선은 남으로 길게 떠나는데
방금 내 생각을 스친, 지난날의 한 아이가
정말 바로 그 아이가, 거짓말처럼 차에서 내려
내 차창 옆을 지나가고 있네
아이를 둘씩이나 걸리고 한 아이는 업고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내가 예전에 이곳 바닷가에서 일하던 때
소나기에 갇힌 대합실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내게
우산을 씌워주고 빌려주던 아이
작은 키에 얼굴은 명랑한데
손은 터무니없이 크고 거칠었던 아이
열일곱이랬고 삼양라면에 일 다녔댔지
우산을 돌려주러 갔던 자취방 앞에서
빵봉지를 들려주다 잡고 놓지 못했던 손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기차는 떠나는데
봄볕이 그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
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바보 같으니라고. 왜 서둘러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는지.
잠시 내릴 역을 잊었던 것처럼,
헛기침 두어번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짐을 들어준 뒤,
다음 기차를 기다려도 여전히 한 생인 것을….
추억과 연민이 함께 봄 햇살을 받는 핍진한 생의 아름다움이여.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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