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백탄 타는 검은 하늘 검은 땅― 태백. 안현미 시인은 신(神)에게서 불을 훔쳐온 프로메테우스의 딸로 그곳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주름진 동굴에서 백일 동안 마늘만 먹고 태어난 곰의 딸인 것을 거부하면서, 낡은 시대와 서둘러 작별을 고하고자 했다. 그녀가 지닌 유년의 꿈은 그 검은 땅을 탈출해 새로운 세상을 잉태한 서울이라는 곳으로 향하는 거였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낯선 세상에서 그녀는 낙타의 쌍 혹 같은 시대의 고환을 타고 건너가던 밤을 맞아야 했고, 사막이 아름다운 건 흔적을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아울러 그녀가 발 딛고 선 세상이 다름 아닌 오아시스도 낙타도 없는 사막이며, 그믐의 여자 몸 속에 뼈를 찧고 있는 사내를 문문히 바라보아야 한다는 즉물적 현실의 도그마였다. 하지만 사내의 갈비뼈를 빌어 태어난 여자인 탓에 사내의 그림자 속에 서 있어야 했던 고뇌어린 나날들과 적막과 고독에 가득 찬 세상사들. 그러기에 고독을 적어놓은 파피루스의 밀서 같은 날 속에서 사랑을 사랑이라고만 말하자고 사라진 한 사내의 그림자 속에서 그녀는 유쾌하게 사내의 그림자를 다 베어 먹고, 어느 날은 사과의 검은 씨를 뱉듯 사내를 뱉는 그 자신을 감행해낸다. 수상하다면 수상한 벽처럼 걸어가던 그 사내. 들끓는 나의 욕망과 때론 안개처럼 혹은 환상처럼 다가서던 또 다른 한 사내의 얼굴. 그 사내는 여자의 갈비뼈를 하나 꺼내들고서 다시금 장작더미 속에 그녀를 던져 넣었던가. 이 때문에 그녀는 다시자 하문 고개를 넘어갔던가. 왜냐고? 사랑이란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였다. 가슴 속에 숨겨진 애증의 칼을 씻혀 줄 세검정(洗劍亭)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나라는 존재와 당신이라는 또 다른 존재가 꿈꾼 세상, 사랑은 이 지상의 모든 아침과 저녁이라고 명명해야 할 정도로 모든 것들의 빛나는 총체였다. 그것은 또한 맨발로 다다른 천상의 시간 같은 거였고, 혹은 0시의 어둠처럼 카오스모스적 혼돈의 날들이었다. 극강(極强)과 극약(極弱)이 혼재하던 사랑했던 날들의 기억들. 허나 그 누구 때문인지 모르나 서로는 이미 사랑의 종착역에 도착해 이제 마침표를 찍기 위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허나 그녀는 아프지 말자고 맹세했건만 당신 때문에 아픈 나를 발견하고, 해가 뜨는 곳, 혹은 해가 지는 곳으로 사라져 가는 서로를 문문히 바라다본다. 천상의 꽃 같은 사랑이 끝나버렸건만 속울음을 삼키며 가슴에 박힌 애증의 칼날을 씻는 이 넉넉한 달관의 세계. 제 마음을 도려낸 칼을 씻고, 잃어버린 시간을 바라보는 이 너끈한 배짱. 지독했던, 미칠 듯한, 사랑은 끝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닐 것이라는 서른 댓 살 먹는 여자가 성찰하는 이 놀라운 중용의 사랑법. 그리하여 0시의 어둠을 꿰뚫어보며 하하 해피 투게더를 외치는 이 시인의 유쾌, 발랄한 봄빛 상상력에 우리는 놀란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대출된 삶을 펴놓고 착란에 휩싸인 봄을 또다시 그리워한다. 회한도 비애도 없이 사는 나에게 이것은 또한 무슨 홍복이란 말인가. 석탄백탄 탔던 태백 땅이 이처럼 놀라운 감수성을 지닌 한 시인을 키워냈다는 것은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시인/이승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