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일찍이 천재시인 랭보는 그렇게 말했다던가. 인생은 감히 말하건대, 인간의 사랑이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상 위에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을 만나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 그 누구의 말처럼 전쟁처럼 다가온 사랑. 하루라도 안 보면 미칠 것 같기에 매일매일 연락을 하고, 함께 술과 밥을 먹고, 그 사랑의 육체적 결실로 섹스라는 것도 한다. 허나 섹스가 사랑을 저 높은 곳까지 구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못 잊힐 사랑은 때론 지문처럼 추억이라는 것을 남겨주기에 한적한 교외선 기차를 타고 낯선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그때 사랑에 빠진 그는 일산의 백마역 부근을 찾았는가보다. 허허로운 그 들녘길. 때마침 바람은 켜켜이 얼싸안은 채 불어왔으므로 서로는 외로웠다. 외로우니까 저 먼 하늘을 지붕 삼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긴 포옹을 나누고, 이내 부싯돌처럼 번뜩이는 성적 교감을 함께 했을 것이다. 단 한번 맛본 그 커다란 황홀은 그동안 지상에서 겪은 수많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날은 저물고 소리소문 없이 꽃이 지듯 그토록 영원할 것 같은 그 사랑도 떠나가고 말았고, 고통스런 현실은 다시금 옛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그 사내는 어느 날 언덕길 들녘을 다시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휘날리는 꽃숭어리처럼 달겨들던 별리의 아픔과 상처뿐인 날들의 낮과 밤. 온종일 해 저문 들길을 거닐다가 속절없이 기차에 올라타고 만 그 사내. 사랑을 잃어버린 사내는 무릎 사이로 턱을 괴고, 필경 그 막막함을 어쩌지 못한 채 괜시리 전봇대 숫자나 헤아렸던가.
사랑을 잃고 어디론가 길 떠나는 자의 심정을 이 시인은 ‘군용 담요처럼 흐린 하늘’ 이라고 썼다. 그리하여 단 한번 맺은 인연의 끈은 인생이란 길을 깨닫게 해준 지침이 되고 만다. 인간은 마침내 혼자라는 것, 홀로 태어났기에 홀로 떠나가야 하는 ‘단독자’ 라는 것. 소설가 김성동식 표현에 따르면 ‘독립프로덕션’ 의 외로움을 몸에 친친 휘감고 다시금 살아내야 한다는 것― 허나, 사랑했던 그 순간이 그나마 추억이 되었기에 바람 같은 날들을 보듬고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 혼자 사랑을 배웠고, 외로우니까 그는 다시 한 사랑을 찾아 길 떠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이승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