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끝자락 해남에 사는 김태정 시인이 던지는 한 소식을 지리산에서 엿본다. 아이쿠, 무릎을 친다. 얼핏 보면 평이한 일상시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예로부터 일상 속에 도가 있다고 했으니 ‘배추 절이기’야말로 일상시의 전범이자 나날이 온몸의 세포가 새롭게 깨어나는 참회와 성찰의 한 소식이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 이처럼 소금과 배추와 나와의 긴장이 동일화의 원심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마침내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에 이르면 배추김치를 절이고 있는 플라스틱 ‘다라이’가 바로 태풍의 눈이 된다.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그렇다.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 입 베어물며’ 김태정 시인은 또 남도의 하루를 살고 있다. 가슴 한 자락이 아프지만, 또한 그 아픈 자리가 환하다. 지리산의 박남준 시인이나 해남의 김태정 시인의 죄가 무어 그리 많겠는가. 아무 죄도 없는 이들이 오히려 참회와 성찰을 하루의 양식으로 삼지만, 죄 많은 이들은 오히려 그 죄의 관성에 의해 죄만 더 저지를 뿐이다.
시인/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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