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에서
골목에서 골목으로 저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詩人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 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莊嚴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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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일본 히메지시 출생. 1952년 『문예』지로 등단. 시집으로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새』등. 1993년 작고. 유고시집으로『나 하늘로 돌아가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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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무구했던, 생전 시인의 모습이 환하게 떠오른다.
말린 해산물처럼 구겨진 얼굴로 저녁 어스름 주막집에 앉거나 서서 늙은 주모가 건네는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는, 새처럼 영혼이 가벼웠던 시인.
흐린 막걸리 잔 속 떠오르는 유년과 고향을 그는 벌컥 마셔댔을 것이다. 할머니 등 뒤에 솟는 고향의 뒷산이며 철도 아닌데 내리는 한겨울의 눈을 그는 몽롱한 상태에서 실컷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때로 몽롱하다는 것은 莊嚴하다. 너무 각박하고 야박하게 세상을 읽으며 따지지 말자. 시인 : 이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