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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술을 담그며
매실주에 취했다가 깨어보니 미점마을의 봄이었다
앵두술을 담그며 그리운 친구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넣고 매암차박물관의 비파를 따다가 비파술을 담글 때도 그러하였다
친구들 까맣게 잊은 날도 선반 위의 술들은 묵묵히 익어가고
앵두와 친구의 이름 매실과 또 다른 친구의 이름 비파와 또 다른 친구의 친구의 이름 저희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에헤라, 소주와 몸을 섞는 동안
늦가을 빗점골의 다래를 따다가 술을 담는다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다래술은 익어 가리니 먼 곳의 친구를 생각하며 그 이름을 쓰고 또 지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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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1984년 『월간문학』198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첫 시집 『빨치산 편지』(1990) 이후,『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1993) ,『돌아보면 그가 있다』(1997년),『옛 애인의 집』, 산문집 『벙어리 달빛』,『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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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담으며 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함께 술잔을 기울일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 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혼자 즐기기에 안타까운, 누군가 곁에 있다면 이 순간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것이다. 술을 빚어 이제 그 예스러운 풍류를 행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이백의 장진주며 정철의 장진주사를 읊조리며 술을 마시던 날이 있었다. 매화가 피는 봄이면 매화꽃송이를 술잔에 띄우고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를, 햇노란 산국이 피는 가을이면 그 산국 한송이 술잔에 띄우며 잔을 권하고는 했다. 중국의 술 중에 <백년고독>이라는 술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술을 마셔본 적이 없으나 그 술 이름만 듣고도 술 생각이 간절해져서 소주를 들이킨 적이 있었다. “먼 곳의 친구를 생각하며 그 이름을 쓰고 또...” 내게도 그런 벗들이 있다. <백년고독>과 같은 술을 나누고 싶은, 지금쯤 지리산의 어느 골짜기에 이원규시인의 오토바이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고 또 다래는 익어 향기로울 것이다.
9월 '이 아침의 시' 시 소개는 박남준 시인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박남준 시인의 촌평과 더불어 시의 향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박남준 선생님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출생, 전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지를 통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2000) 등과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 등이 있습니다. 현재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의 지리산자락 악양에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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