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시에는 이질적인 서사와 풍경들이 동일한 시적 공간 속에 작은 나뭇가지들처럼 서로 얽혀 있다. 그 이미지와 진술들은 분명 서로에게 작용하면서 ‘어떤 공간’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러나 구체적인 연관관계로 단일한 의미망이나 맥락을 짜나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적인 세계와 환상적인 세계, 산문적 진술과 시적 진술이 한 편의 시 속에, 또는 한 문장 속에 공존하면서 무엇이라고 선명하게 말할 수 없는 시적 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시를 읽는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개별 이미지들이 환기시키는 암시적 영상이나, 또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시구와 시구 사이에 파장처럼 일어나는 어떤 감정상태인지 모른다. ‘발가벗은 나무-떨어지는 열매들-얼음 깔린 하늘-연탄을 끌고 가는 붉은 말-허리 꺾인 아이들-철 지난 고추나무-幻影’이라는 진술. 천천히 시를 읽어나가는 나에게 우선 떠오르는 풍경은 산동네에 가까운 변두리 마을의 모습이다. 눈도 쌓이지 않은, 바람만 살갗을 에는 가난한 변두리 마을을 질러가는 연탄마차. 추운 골목길에서 옹송거리며 놀다 지나가는 마차를 바라보는 아이들. 아이들이 걸치고 있는 철 지난 옷과 지친 눈빛. 아이들의 그런 모습과 시인의 의식 속에 어른거리는 ‘발가벗은 나무-떨어진 열매들’이라는 중첩된 이미지. 인용된 시 부분의 앞뒤에 나타나는, “으흐허 웃고만 있”는, 그러니까 세상일에 무기력하기만 한 아버지. 그런데 그 풍경들이 시인에게는 왜 ‘환영’이 되는 것일까? 현실세계의 어떤 경험에 깊이 억압된 나머지 그것에 어떤 분명한 의미를 부여할 만큼 자유로운 거리와 시각을 갖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가. 의식의 맥락이 그 억압에 깨어져 토막 난 정황인가. 아니, 차라리 시인은 그와 함께 살았던 동시대 사람들의 억압된 의식을 그런 방식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시인/박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