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개안
적십자병원에서 개안 수술을 받았다. 눈에 늘 안개가 끼어 있는 백내장. 흐리게 떠돌던 팔 다리 묶인 채, 혈안이 되어 인제 세상 더 볼 것 없다는 말인지. 안개 속에서 아버지는 잠적했으며 안개 끝에서 어머니마저 잃었다. 그리하여 나도 결국 안개가 되었으며 눈 시린 아내는 말할 것 없고 안개 낀 나를 따라, 두 딸과 한 아들도 안개 속에서 허망하고 뼈저린 삶. 딸들에겐 선명한 안개꽃을, 아들에겐 안개 터는 날개를. 안개의 자본주의를 헤집어나가야 한다. 안개의 사회주의는 안개를 털어야 하는 것이다. 개안의 의미를 나는 믿지 않으며, 개안의 의미를 나는 믿는다. 백내장 수술 후 눈은 새로 열렸으며 나는 다시 이 지상을 보게 되었다. 세상과 나는 변함없이 변하였으며, 새로 피는 안개꽃은 안개가 아니라는 것과 안개 걷은 집, 안개 터는 나무, 그들로 인하여 나도 다시 보였다.
|
|
마종하
1943년 원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겨울행진」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귀가」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노래하는 바다』, 『파 냄새 속에서』, 『한 바이올린 주자의 절망』, 『활주로가 있는 밤』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하늘의 발자국』을 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