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전화 받지 말 것’ 이라고 쓴 딱지를 전화기에 붙여놓고 나는 부재중이었다. 나,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나갔다 돌아왔을 때 오랜 잠에도 식지 않고 베개의 부드러움에 묻힌 턱뼈로만 존재했다. 어떤 소리도 분간되지 않고 그저 소리로만 공기를 끄적이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마음은 풀리고 적막했다 적막하게 평화로웠다 나, 아득히 세상과 멀리.
닝닝닝 전화벨이 울렸다. 닝닝닝 전화벨 끊이지 않고 닝닝닝 다 됐니? 넘실거렸다. 나는 꽉 눈을 감았다. 닝닝닝 꽃이 피고 닝닝닝 바람 불고 닝닝닝 닝닝닝 누군가 내 다섯 모가지를 친친 감았다.
아주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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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산문집으로 『나는 고독하다』, 『육체는 슬퍼라』 등.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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