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창작과 비평”을 통해 접한 이동순의 시이다. 그때까지 교과서에서 조병화나 박남수 또는 서정주의 심화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이동순의 ‘애장터’를 비롯한 일련의 시들이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그때 나는 번역투의 외래시가 아닌 우리에게도 한국시의 뭔가가 존재하는구나 하고 막연한 기대에 자세를 바로 잡아 앉아야 했다. 70년대 80년대의 민중시가 기능의 확장과 기술의 약화를 불러왔다는 모더니스트들의 비아냥을 잠재울 수 있는 시가 ‘개밥풀’류의 시다.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방게 물장군들이 지나가도/결코 스크램을 푸는 일 없이/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휘파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나/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논의 수확을 위하여/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더니
개밥풀은 결국 큰비에 흩어지고 만다. 그러나 끝내 봄의 번성을 위하여 겨울 논바닥에 달라붙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민초의 의지가 역력하다.
이 시는 그런 민중시의 일화로 읽어도 좋고 그냥 단순히 자연현상의 묘사로 읽어도 좋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생태시가 아니겠는가. 일찍이 문학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상이나 카프카, 토마스 만 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좌절과 죽음의 향기를 맛볼 것이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신경림의 ‘농무’나 이동순의 세례를 받으며 우리시의 본령에 합류한다. 나날이 시가 파편화 되는 시기에 되새겨 볼만 한 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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