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그림 “키스”에서 벼랑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김해자 시인은 숨은 그림 찾기에도 없는 벼랑을 찍어냈다. 남근 형상을 닮은 남녀의 포옹, 그 아찔하고 숨막히는 순간이 삽시간에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온다.
얼마 전, 한 여인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이 남편 살해범이라고 고백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서면 지극히 성실해지고 진실해지는 버릇이 있다. 제 아무리 평생 진실하게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죽음 앞에 이르면 더 진실한 사랑이 내재하고 있음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낸다. 벼랑-죽음-은 인간을 더 깊고 그윽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뜨거운 열정은 극도의 안온함으로, 과도한 진실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움으로 표현되어 있다. 평정의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아득한가. 벼랑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극도의 진실성을 가진다. 대담하다.
천길 벼랑이라도 아랑곳없이 발을 내딛을 것만 같던 김해자 시인이 벼랑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죽음의 사선을 넘나든 병상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인가. 죽음의 깊은 심연을 보아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랑일까. 인생길을 끝없이 이어지는 백척간두로 받아들이고 그 위를 사뿐히 옮겨 밟으며 걸어가는 듯한 그의 얼굴에 클림트의 여인이 겹쳐진다. 그 배경에는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백미인 대밭 위의 싸움, 그 부드러운 액션이 일렁거린다. 간두(竿頭)의 겨룸이 그렇게 평화롭다니.
긴 말 할 것 없다. 이 시는 간두의 삶, 간두의 사랑, 죽음과 길항할 때만 얻을 수 있는 비밀-절정의 평정심-을 알아버린 고해성사다. 벼랑의 아가리에 입맞춤하는 낙화의 가벼운 투신이다. 분분하다.
시인/안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