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강한, 몸
십일 년 된 묘를 개장하기로 한다
헐벗은 봉분을 연다
흙을 물고 쓰러지는, 그물 같은 뿌리들
검고 축축한 집……
그 속에서 한 점 한 점
벗어버리려 애쓰는 아버지
물로 풀어져 눈알이 흘러간다
풀로 솟아난 손가락이 허공의 급소를 더듬는다
벌레로 기어다니는 내장, 꿈틀꿈틀
곰팡이 슨 채로
거의 육탈이 안 된 다리 한 짝
걸어가야 할 많은 길들이 남아 있었다는 걸까
짓는 데 십수 년
그때 이룬 몸을 아직 허물지 못한 아버지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이처럼
풀이 죽은 모습이다
어떤 간섭도 싫다는 듯
저 혼자 생성되고 무화되는
완강한, 몸
아버지가 남긴 몸을 이끌고
나는 덜그럭거리며 하산한다
대지와 하늘이 만나는 산등성이 부근
진달래가 발진처럼 돋아나 있다
― 『실천문학』 2004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