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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웅 시인은 오송회 사건으로 6년 남짓 옥살이하고 출소한지 2년 만에 이 시집을 냈다. 그리고 3년 만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1992년 12월이었다. 이 시집 서문을 써 준 문익환 목사는 그 해 1월 앞서 갔고, 김남주 시인은 1994년 2월에 뒤를 따랐다. 이들은 모두 시인이었고, 이들은 모두 한 가지 악법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갈 때는 시간이 없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꺼번에 썰물처럼 이 세상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들을 핍박했던 국가보안법을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그때와는 사뭇 풍경이 다르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는 쪽이 보수진영 같고, 유지하자는 쪽이 진보 같은 그런 진풍경이 곳곳에서 그려지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국가보안법! 멋모르고 그 마수에 걸려든 사람이 있고, 두려움 없이 그 가시 오라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한 번 걸려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법이었다. 설사 벗어나더라도 정신적, 육체적 파괴력이 대단해서 여간해서 견디기 어렵다. 다들 제 명보다 일찍 갔다. 억울한 죽음들이었다.
술을 마셔도, 연애를 해도, 아이들을 가르쳐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밀고자의, 포획자의 눈의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시절. 허수아비도 국가보안법을 걸어 사형시킬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때를 이 시는 신파조로 진술하고 있다. 정색으로는 도저히 답을 찾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목숨을 걸고”앞에 보이지 않는 말이 국가보안법임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술도, 사랑도 교육도 온전히 술과 사랑과 교육을 위해 목숨을 걸 세월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목숨이 더 아깝고 서럽고 억울하다. 이런 글을 그다지 목숨 걸고 쓰지 않아도 되는 세월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시인/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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