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詩篇 3
 
 김신용
 
 
 
 짐보다 빈 지게 위의 허공이 더 무거운 날
 고난처럼 후미진 청계천 뒷길 따라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거기 춘심이네 집
 마치 둥지처럼 아늑한 불빛이 고여 있었지
 막아선 담벼락엔 지게 서로 몸 포개 기대어 있었고
 그 지게를 닮은 사람들, 노가리를 대가리 째 씹으며
 술청인 좁은 부엌에 서서 막걸리를 마실 때
 춘심이는 부뚜막에 앉아 바느질을 하곤 했었지
 잔술을 팔며, 찢겨지고 해진 막벌이꾼들의
 작업복을 기워주고 있는 흰 솜털
 보송송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연탄불
 위의 노가리처럼 검게 타며 오그라들었고
 뼈 하나 남김없이 나를 씹어먹고 싶어져 망연히
 창밖을 바라보면 시커먼 매연의 하늘
 가슴 가득 차오르는 어스름 속, 잔광이듯
 그 티 없이 맑은 미소의 바늘이 한 올 한 올
 허망과 알 수 없는 분노로 터진 자리를
 밟아올 때마다 아무리 땀 흘려도 내 몸뚱이
 하나도 채 적시지 못하는 나의 땀방울들이
 어느새 무거운 짐이 되어 짓눌러와 나를 더욱
 남루의 노가리로 여위게 하곤 했지
 바깥은 찬바람이 제 가고 싶은 데로 불고 있었고
 담 밑의 지게들은 서로 온몸 오그려
 추위를 견디고 있었지만 노상 비틀거리는 것은
 가난의 앙상한 形骸, 그림자뿐인
 귀로, 아무리 갈아도 자꾸만 돋아나는
 쥐의 이빨처럼 취기가
 하루의 발뒤꿈치를 야금야금 갉고 있을 때
 그 가녀린 풀씨 같은 손길이 여며 준 작업복은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풀잎으로 떠올려주곤 했지
 그래, 거리 곳곳에 피어오르는 모닥불로
 관절염을 앓고 있던 청계천의 그 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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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용
 1945년 부산 출생으로,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외 여섯 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장편소설 『고백』, 『기계 앵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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