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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국가
이 아침에, ‘시인과 국가’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다룬 영화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실미도>, <태극기를 휘날리며>, <말죽거리 잔혹사>…. 저는 아직 1천만명 신기록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저항감 때문에 <실미도>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신정권의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충성!’ 구호와 ‘줄빠따’가 공존하는 등교 풍경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시인과 국가’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궁합을 생각했습니다. 한 시인은 국가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위반의 열정으로 시를 썼는가 하면, 또 다른 한 시인은 <실미도>가 말하듯 병영(兵營) 국가의 희생양(scapegoat)이 되어 상처 입은 영혼이 되었습니다. 故 김남주와 신대철 시인이 바로 그들이지요. 『나의 칼 나의 피』(김남주)와 『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는 유하의 이소룡이 그렇듯이, 저 1980년대 문학청년들의 눈부신 의장(意匠)들이었지요. 국가주의에 대한 불온한 위반과 전복을 꿈꾸는 한편에, 내 마음의 ‘무인도’를 갖고자 했던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2월 13일이면 故 김남주 시인의 10주기입니다. 시로 쓴 시론의 성격을 갖는 「시」에서 김남주 시인은 이 시를 쓰는 순간 자기 시의 운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법(法)과 시(詩). 위 한자들을 파자하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지겠지요. 세상의 법이 없어지지 않듯이, 오도된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불온한 시적 모반의 상상력은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gohy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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