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墓碑銘)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굿굿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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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선생 약력
1941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5년 『문학과지성』에 「영산(靈山)」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크낙산의 마음』(1986), 『좀팽이처럼』(1988), 『아니리』(1990), 『물길』(1994),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 등이 있음. 제1회 녹원문학상, 제5회 <오늘의 작가상>, 제4회 김수영문학상, 제4회 편운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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