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비빔밥
허수경
교실에는 작은 석유난로가 있었다. 겨울이면 그 난로 옆에 도시락을 두었다. 아침에 도시락을 그렇게 난로 곁에 두면 양은 도시락 속에 든 밥은 학교까지 오느라 찬바람을 맞고도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사학년 땐가,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도시락 반찬으로 아이들 집안의 빈부가 가늠질되는 게 보기 좋지 않았는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밥하고 가져온 반찬하고 큰 양동이에 부어 같이 비벼 먹자.” 모두 도시락을 내어놓았고 가지고 온 반찬도 함께 양동이에 부었다. 비벼서 서로 나누어 먹었다. 비빔밥을 먹다보면 선생님 생각이 난다. 굶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 다섯 개를 가져오셔서는 양동이에 붓던 처녀 선생님.
- 출처: 허수경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문학동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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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경 시인약력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1987년 『실천문학』에 시 「땡볕」외 3편 발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모래도시』를 출간함. 제14회 동서문학상(2001) 수상. 현재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 공부중.
▶ 추천의 말
허수경이 독일에서 치르고 있는 저 십 년 가까운 고향의 이름과 뜻을 나는 모른다. 자신은 알고 있을까.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그는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진 그의 글들은 훨씬 깊고 진실한 얼굴을 하고 있다. 대체 그는 무엇을 한 것일까.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고 그 조숙한 청승으로부터, 형용사적 글쓰기의 오랜 욕망으로부터 이만큼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가 목말라하던 ‘말의 근원’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은 곧 죽음에 맞먹는 그 무엇을 한 차례 치르고야 가능하다고 들어온 까닭에, 허수경의 십 년이 이룩한 이 변모 앞에서 나는 다만 매무새를 바로 하고 힘겹게 자리를 고쳐앉아 볼 따름이다. / 김사인·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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