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느티나무
이은봉
스스로 號 하여, 각자 李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동구 밖, 오래된 느티나무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 그렇게 묵묵히 젊은 느티나무가 있다
이 동네 입싼 참새들, 잔가지 위로 몰려나와 오조조 떠들며 마음 삭이는 것이, 느티나무는 좋다 더런 보금자리를 틀고, 아예 뾰족뾰족 차리는 놈도 있다
흔쾌한 마음으로 그래라, 하며 각자 이 선생이 씨익, 웃는다 겨울 가고 봄 오면, 그래도 물오르는 마른 나뭇가지, 청춘의 근육 불퉁거린다.
-<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창작과비평사, 2002>
☞ 지천명이 다 되어서야 순수한 서정 속에선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물고기는 잡종이다. 눈꺼풀이 없어 끝내 눈을 감았다 뜨지 못하는 버들붕어까지도! / 「시인의 말」 중에서
▶ 이은봉 (1953- ) 195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숭실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의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시집 『좋은 세상』(1986), 『봄 여름 가을 겨울』(1989),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1994), 『무엇이 너를 키우니』(1996) 등을 펴냈고,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현실의식』(1993), 『시와 생태적 상상력』(20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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