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白蟻(백의) - 김수영
내가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된 것은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안에 있어서도 저 무시무시한 백의를 보기 시작한 때부터이었다
백의는 자동식문명의 천재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유주에게는
일언의 약속도 없이 제가 갈 길을 자유자재로 찾아다니었다
그는 나같이 몸이 약하지 않은 점에 주요한 원인이 있겠지만
뇌신보다 더 사나웁게 사람들을 울리고
뮤우즈보다도 더 부드러웁게 사람들의 상처를 쓰다듬어준다
질책의 권리를 주면서 질책의 행동을 주지 않고
어떤 나라의 지폐보다도 신용은 있으나
신체가 너무 왜소한 까닭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를 않는다
고대 형이상학자들은 그를 보고「양극의 합치」라든가 혹은 「거대한 희열」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십구세기 시인들은 그를 보고「도벽의 왕자」혹은 단순히 「여유」라고 불렀다
그는 남미의 어는 면공업자의 서자로 태어나서
나이아가라강변에서 수도공사에 정신하고 있었다 하며
그의 모친은 희랍인이라고 한다
양면이 모두 담홍색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오랜 세월을 암야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맏누이동생은 그를「하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꼬와서
내가 어느날 그에게「마신」이라고 별명을 붙였더니
그는 대뜸
「오빠는 어머니보다도 더 완고하다」고 하면서
나를 도리어 꾸짖는 척한다
(그가 나를 진심으로 꾸짖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의 은근하고 매혹적인 표정에서 능히 감득할 수 있었다)
- 비참한 것은 백의이다
그는 한국에 수입되어가지고 완전한 고아가 되었고
거리에 흩어진 월간 대중잡지 우에 매월 그의 사진이 게재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어느 삼류신문의 사회면에는 간혹 그의 구제금 응모기사같은 것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진과 기사를 볼 때마다
이것은 「아틀랜틱」과「하아파스」의 광고부의 분실이 나타났다고
이곳 저널리스트의 역습의 묘리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백의는 이와같은 나의 안심과 태만을 비웃는 듯이
어느틈에 우리 가정의 내부에까지 투입하여 들어와서
신심양면의 허약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나를 독촉하여
「희랍인을 모친으로 가진 미국인에게 대한 호소문」과 「정신상으로 본
희랍의 독립선언서」를 써서
전자를 현재 일리노이주에 있는 자기의 모친에게 보내고
후자는 희랍국립박물관관장에게 보내달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무리한 요청에 대하여 나는 하는수없이
「그것은 나의 역량 이상의 것이므로 신세계극단의 연출자 S씨를 찾아가보라」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여가지고 즉석에 거절하여버렸다
오히려 이와같은 나의 경멸과 강의로 인하여
나는 그날부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어저께 내가 오랜간만에 거리에 나가니
나의 친구들은 모조리 나를 회피하는 눈치이었다
그중의 어느 시인은 다음과같이 나에게 욕을 하였다
「더러운 자식 너는 백의와 간통하였다지? 너는 오늘부터 시인이 아니다 . . . . . .」
- 백의의 비극은 그가 현대의 경제학을 등한히 하였을 때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1956>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52,884 | 2023.12.30 |
3930 | 빨래하는 맨드라미 - 이은봉 | 風磬 | 26,754 | 2006.07.05 |
3929 | 동네 이발소에서 - 송경동 | 風磬 | 24,283 | 2006.07.05 |
3928 | 사평역에서 - 곽재구 | 風磬 | 22,500 | 2006.08.22 |
3927 | 여름날 - 신경림 | 風磬 | 19,238 | 2006.08.25 |
3926 | 고향 - 정지용 | 風磬 | 19,164 | 2006.08.25 |
3925 | 인사동 밭벼 - 손세실리아 | 風磬 | 17,957 | 2006.08.25 |
3924 | 시를 쓰는 가을밤 - 이원규 | 風磬 | 21,575 | 2006.08.25 |
3923 | 휴전선 - 박봉우 | 風磬 | 23,238 | 2006.08.26 |
3922 | 홍시들 - 조태일 | 風磬 | 19,634 | 2006.08.26 |
3921 | 늦가을 - 김지하 | 風磬 | 17,873 | 2006.08.26 |
3920 | 빛의 환쟁이 - 정기복 | 風磬 | 15,446 | 2006.08.27 |
3919 | 바다와 나비 - 김기림 | 風磬 | 18,982 | 2006.08.27 |
3918 | 木瓜茶 - 박용래 | 윤영환 | 18,867 | 2006.09.02 |
3917 | 白樺 - 백석 | 윤영환 | 15,372 | 2006.09.02 |
3916 | 11월의 노래 - 김용택 | 윤영환 | 32,593 | 2006.09.02 |
3915 | 얼음 - 김진경 | 윤영환 | 19,332 | 2006.09.02 |
3914 | 바람이 불어와 너를 비우고 지나가듯 - 박정원 | 윤영환 | 21,196 | 2006.09.02 |
3913 | 겨울날 - 정호승 | 윤영환 | 16,760 | 2006.09.04 |
3912 | 춘란 - 김지하 | 윤영환 | 20,714 | 2006.09.04 |
3911 | 돌베개의 詩 - 이형기 | 윤영환 | 25,613 | 2006.09.04 |
3910 | 빈집 - 기형도 | 윤영환 | 12,690 | 2006.09.04 |
3909 | 9월 - 오세영 | 風磬 | 13,002 | 2006.09.05 |
3908 | 종소리 - 이재무 | 風磬 | 17,427 | 2006.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