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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熟한 盜賊 (미숙한 도적)- 김수영
기진맥진하여서 술을 마시고
기진맥진하여서 주정을 하소
기진맥진하여서 여관을 차저 들어갔다
옛날같이 낯선 방이 그리 무섭지도 않고
더러운 침구가 마음을 괴롭히지도 않는데
의치를 빼어서 물어 담거놓고 들어 누우니
마치 내가 임종하는 곳이 이러할 것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
옆에 누은 친구가 내가 이를 뺀 얼골이 어린 아해 갔다고 간간대소하며 좋아한다
이 친구도 술이 취한 얼골을 보니 처참하다
창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도 불안하지도 않고
도회에서 태어나서 도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젊은 몸으로 죽어가는 전선의 전사에 못지않게 불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생각을 함으로써 하로하로 도회의 때가 묻어가는 나의 몸을 분하다고 한탄한다
친구가 일어나서 창밖으로 침을 뱉고 아래로 내려갔다 오드니 또 술을 마시러 나려가자고 한다
기진맥진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차가운 이를 건져서 끼고 따라서 나려간다
그중 끝의 방문을 열고보니 꺼먼 사람이 셋이나 앉었다
얼골은 분간할 수도 없는데
술 한병만이 방 한가운데
광채를 띠우고 앉어 있다
나는 의치를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 앉자
선뜻 인사를 하고
음시를 한바탕 읊었드니
여간 좋아들 하지 않는다
나이를 물어보기에 마흔여덜이라고 하니 그대로 곧이듣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
눈알에 백테가 앉은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 모두 몽롱하다
청한지 반시간만에 떠다 주는 냉수를 한 대접 마시고
계단을 내려와서
어제ㅅ밤에 술을 마시든 방을 드려다보니 이불도 벼개도 타구 하나 없이 깨끗하다.
「도적질을 하는 것도 저렇게 부지런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무어야, 빨리 나가서 배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세.」하고 친구가 서두른다
「그러니까 초년생도적이지」하고 쑥스러운 대ㅅ구를 하면서
기진맥진한 머리를 쉬일 곳을 찾아서 친구의 뒤를 따라서 걸어나왓다.
우리의 잔등이에는「미숙한 도적」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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