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마셔요 - 한용운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숙이고,
아기자기한 사랑을 받으려고 삐죽거리는 입술로
표정하는 어여쁜 아기를 싸안으려는
사랑의 날개가 아니라 적의 깃발입니다.
그것은 자비의 백호광명이 아니라
번득거리는 악마의 눈빛입니다.
그것은 면류관과 황금의 누리와 죽음과를
본 체도 아니하고 몸과 마음을 돌돌 뭉쳐서
사랑의 바다에 퐁당 넣으려는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위안에 목마른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대지의 음악은 무궁화 그늘에 잠들었습니다.
광명의 꿈은 검은 바다에서 자맥질합니다.
무서운 침묵은 만상의 속살거림에
서슬이 푸른 교훈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아, 님이여! 이 새 생명의 꽃에 취하려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거룩한 천사가 세례를 받는 순간 순결한 청춘을 똑 따서
그 속에 자기의 생명을 넣어 그것을 사랑의 제단에
제물로 드리는 어여쁜 처녀가 어디 있어요.
달콤하고 맑은 향기를 꿀벌에게 주고
다른 꿀벌에게 주지 않는 이상한 백합꽃이 어디 있어요.
자신의 정체를 죽음의 청산에 장사지내고
흐르는 빛으로 밤을 두 조각에 베이는 반딧불이 어디있어요.
아아, 님이여! 정(情)에 순사(殉死)하려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그 나라에는 허공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우주만상의
모든 생명의 쇳대를 가지고,
척도를 초월한 삼엄한 궤율로 진행하는
위대한 시간이 정지되었습니다.
아아, 님이여! 죽음을 방향(芳香)이라고 아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