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1 - 기형도
아주 작았지만 무슨 소리가 들린 듯도 하여 내가 무심코
커튼을 걷었을 때, 맞은편 3층 건물의 어느 창문이 열리고
하얀 손목이 하나 튀어나와 시들은 푸른 꽃 서너 송이를
거리로 집어던지는 것이 보였다. 이파리들은 잠시 공중에
떠있어나볼까 하는 듯 나풀거리다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나는 테이블로 돌아와
묵은 신문들을 뒤적였다.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깔이 조금 고여 있었다.
스위치를 내릴까 하고 팔목시계를 보았을 때 바늘은 이미
멈춰 있었다. 나는 헛일삼아 바늘을 하루만큼 뒤로 돌렸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내가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을 때 그는 소란하게 웃었다. '그냥 거리로요'
출입구 쪽 계단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위에, 명함꽃이, 만년필, 재떨이 등 모든 형체를 갖춘
것들마다 제각기 엷은 그늘이 바싹 붙어 있는 게 보였고 무심결
나는 의자 뒤로 고개를 꺾었다.
아주 작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다시 창가로 다가갔을 때 늘상 보아왔던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거리의 아주 작은 빈곳까지 들추며 지나갔다. '빈틈이 없는 사물들은
어디 있을려구요' 맞은 편 옆 건물 2층 창문 밖으로 길게 삐져나온
더러운 분홍빛 커튼이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 섭섭하다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버려두세요. 뭐든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먹다 버린 굳은 빵쪼가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듯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둠과 거리는 늘상 보던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천정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압핀처럼 꽂혀 있답니다' 그가 조금전까지
서있던 자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깔이 조금 고여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발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법이죠'
스위치를 내릴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익숙한 그 소리는 분명히 내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