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가 되어 주렴 - 박소란
검정 비닐봉지 하나 담장 너머로 펄렁
날아갈 때 텅 빈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로
자꾸만 저기로 향하려 할 때
정처 없이 헤매는 마음아
이리 온,
한 번쯤 나의 고양이가 되어 주렴
뜻 모를 젖은 손이 가슴을 두드리는 새벽
슬픔을 입에 문 젖내기처럼 골목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주지 않을래?
집집마다의 비극을 모조리 깨워 성대한 잔치를 벌이자
꼬리가 잘린 채 버려진 것들의 잔치를
그러니 이리 온,
나의 고양이야
사나운 발자국이 겁주듯 찾아든 아침
우연히 바닥에 뭉개진 비닐봉지를 맞닥뜨린 행인이 아악!
비명을 지를 때, 정말이지 비닐봉지가
밤사이 웅크려 죽은 한 마리 고양이로 보일 때
아무렇지 않은 척 피를 닦고 일어나 다시
저기로 잠잠히 멀어져 갈
나의 마음아,
제발 이리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