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우울 - 이은규
울울창창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우거진 모습
막힐 울과 무성할 창의 어깨동무가 보기 좋구나
무섭도록 짙은 여름잎
우거진 세계, 큰 인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막힐 울과 무성할 창의 그늘진 우울만이 곱구나
큰 나무들 사이 작은 나무에게
한 줄기의 햇빛
한 줄기의 바람
한 줄기의 물길
대신, 남아도는 그늘만 잉여롭다 풍요롭다
작은 나무로부터 눈길을 거두고
오늘의 내리막길을 따라 걸으면
우리는 어느 방향의 발자국을 남기게 될까
문득 한 인물의 이력을
몇 개의 키워드로 요약하는 폭력에 대해
새삼 놀라워할 것, 지난 일들을 다시 쓸 것
오래전 그의 발자국이 국경에서 멈췄듯이
잠시 멈춘 숲길 위에서 떠오른 책 속의 문장
‘고통은 슬픔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저항의 오르막길이 되어야 한다’
온 몸은 귀가 되고
어떤 문장은 들려오는 순간 다시 쓰여질 것이다
오르막길 쪽으로 한 뼘 더, 꿈꾸는 우울
이토록 아름다운 울울창창의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