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스웨터 - 최규승
여자는 식탁을 풀어 뜨개질을 시작한다
짙은 갈색의 스웨터
식탁이 풀리자 그릇들이 허공에 둥둥 뜬다
가슴둘레는 다른 색이 좋겠어
풀리는 야채그릇
스웨터의 가슴둘레는 파란색으로 강조된다
김치그릇의 끝을 당겨 스웨터의 가슴에
붉은 새를 한 마리 짜 넣는다
두 팔과 목을 짤 실이 부족해
결국, 여자는 뭄을 푼다
발끝을 당겨 뜨개질을 계속한다
다리와 엉덩이, 배와 등, 가슴이 풀리자
여자의 남은 몸뚱어리는 손과 머리
아직 스웨터는 완성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뜨개질을 할 수 없지
여자는 얼굴을 풀어나간다, 이어 팔을 푼다
손목이 풀릴 때 스웨터는 완성된다
허공에 떠 있던 여자의 두 손이 뜨개바늘을 놓고
스웨터를 내게로 가져온다
허공의 스웨터가 나를 집어넣는다
내 몸이 들어가자 스웨터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어느새 여자의 두 손은 떠 있는 그릇들 사이에서
가볍게 흔들리며 스웨터를 배웅한다
이른 아침,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스웨터들이 떠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