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얼룩말* - 황병승
북향이던 집이 남향이 되고
더워 못 살겠네 무덤 속에서 있어야 할 아빠가
흙발을 탈탈 털며 이 방 저 방 들락거리고
엄마 옷을 꺼내 입은 친할머니가 내 등을 토닥이며
독 안에라도 들어가야지 죽는 것보단 낫잖니
빼빼 마른 배를 쓸며 나는 울긋불긋 입덧을 한다
살아야지요
천둥이 치고
저쪽 하늘에선 벌거벗은 엄마가
추워 죽겠네 아래턱을 덜덜 털며 통곡을 하고
북향이 남향이 된 집에서
죽은 아빠가 한나절 여기저기 흙칠을 하다 떠나간 집에서
향 피우는 냄새에 자꾸만 헛구역질이 치미는 집에서
아가는 없고 아가의 울음소리만 가득한 집에서
할머니는 곤지곤지 잼잼 혼자 놀았다
참다 참다 못한 엄마가 뛰어들어와
(저쪽 하늘은 잠깐 조용해지고)
빼빼 마른 뱃속에서 끄집어낸 핏덩이를 내게 건네며
네 아부지 꼴 좀 봐라 -
카랑카랑한 엄마의 목소리가 유리창을 흔들고
할머니가 엄마의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남향이던 집이 다시 북향이 되고.
아랫도리가 딱딱해진 채 꿈에서 깨어났을 때,
살이 뒤룩뒤룩한 엄마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치며
드라마 속, 맨발로 달아나는 늙은 여자를 향해
독 안에 어떻게 들어가니 차라리 죽고 말지!
검은 떡을 맛없게 씹고 있었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제목.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