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분노를 위하여 - 이재무
나는 내가 시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바닥에 떨어진 새의 시체와도 같이 나의
심장은 싸늘히 식어버렸다 나는 이제
분노할 줄을 모른다 지난날 내 생을
다스려온 그 아름다운 분노는
부지런히 죄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내 생을 떠나버렸다 나는 이제
울지 않고도 크게 세상을 말할 줄
알게 되었다 더러운 추문과 스캔들에
두 눈 반짝이는 나는, 시집을 다섯 권이나
낸 시인이다 거듭 실패하는 동안
제법 독자들의 취향이나 입맛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분노는 내 생을
불편케 할 뿐이다 매향리가 미군에
폭격을 당해도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북한 어린이가 굶어죽어도 눈물은커녕
비웃음만 나온다 동남아시아 가난한 나라
밀입국한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산재당해
오 년치 칠 년치 임금 고스란히 병원비로
날려버려도 그것은 그들 개인의 불운일 뿐
나는 이제 가슴이 벌집인 양 숭숭 뚫리지도
매 맞은 개구리 뒷다리마냥 벌벌
떨리지도 않는다 나 이제 살 만하다
그러니 청승을 강요하지 말라
나는 이제 길바닥 아무렇게나 놓인
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내 몸을
토막 난 막대기로 잘못 알고 함부로
걷어차도 인내에 익숙한 나는 아마
견성한 도인처럼 허허허,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