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게질 - 장인수
- 짐승들이 가려운 곳을 긁느라고 뿔질을 하고
다른 물건에 몸을 대고 비비는 것을 비게질이라고 한다.
우리 집 마당에는
뿔이 많았다
울음이 많았다
마당은 뿔질 경연장이었다
사랑방 부뚜막에서 놀다가
가마솥 뚜껑을 뿔로 걷어차
우당당탕 쨍그랑 굴리기도 했다
어떤 놈은 자기들끼리
수천 번 뿔싸움을 했다
딱 딱 딱
뿔이 뿔을 치는 소리
횃불을 피우려고
비게질을 했다
뿔은 쉽게
횃불이 되지 않았지만
광기(狂氣)가 번쩍 빛났다
어떤 염소는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꺼내어
각혈하듯 뿔질을 했다
뿔은 염소의 각질을 뚫고
송곳의 심장부로 진군했다
어떤 놈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뛰놀다가
아버지에게 작대기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껑충 뛰어 멀리 달아났지만
어느새
되돌아와 무리에 섞이었다
내가 독감에 걸려
펄펄 끓어오른 날
녀석들은
소리 없이 마루에 올라와
격자무늬창호문을 대고
조용히 뿔질을 했다
창호지가
벅벅 찢어졌다
월광(月光)이 묻은 송곳 횃불이
방안으로 쑤욱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