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의 잠 - 최수연
누에가 입으로 실을 토해 집을 짓고 있다
볕 좋은 아랫목에 앉아 나는 누에를 에워싼 실을 한 가닥씩 뽑아낸다
돌아누워 뿜어내는 누에의 실은 둥글게 말린 길을 만들고
나는 그 길을 한없이 따라가다가 문득 뒤가 무서워져
흰 실 한 가닥을 바람에 날려보내고 마는데
내가 실을 뽑는 동안 살찐 누에는 의심도 없이 순정한 잠이 들지만
이 혼곤한 잠을 뚫고 어느 날 날아오른다는 날개의 날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톡톡 끊어지는 실을 한 올씩 뽑을 때에도 누에는 꼼짝 않고 실을 뿜는다
소나기 소리를 내며 뽕잎을 먹어치우던 누에는
몸을 불리며 몇 번의 잠을 건너는 것인데
끝내는 저만의 둥근 방에 들어 오그라든 잠에 갇히는 것인데
한 번 닫히면 그 잠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아 나는
자꾸만 흰 실을 훔쳐내는 것이다
뽑아도 뽑아내도 사방은 온통 흰 빛의 고요뿐, 둥글게 닫히는 그 빛이 서러워
나는 슬며시 안방을 나오고 마는데 문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는 누에,
내게로 몸을 돌리며 흰 실은 몇 개나 되느냐 묻는다
비단을 짤 수도 없는 실, 누가 폐경을 지난 누에의 몸에서
분칠한 날개가 돋아난다고 말을 하는가
일생을 구물거리며 기어온 초승달 하나가
초저녁 창 밖에서 어느새 지고 있다